1. 프리뷰
밤 2시 13분, 민재는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벽지 모서리의 얼룩, 형광등 갓에 낀 먼지, 에어컨 송풍구의 검은 틈. 익숙한 것들을 세어 보는 건 불면증에 좋다고 누가 말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익숙함이 오히려 불편했다. 마치 너무 오래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그 의미가 흐려지는 것처럼, 방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스르륵.
책상 위에서 희미한 빛이 번졌다.
민재는 고개를 돌렸다.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알림도 없었는데. 그냥 저절로 켜진 것이었다.
‘배터리 방전 때문인가.’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잠금화면이 아니라 카메라 앱이 켜져 있었다. 얼굴 인식 프리뷰 모드. 전면 카메라가 그를 비추고 있었다.
화면 속에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부스스한 머리, 피곤한 눈, 약간 벌어진 입술.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당연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화면 속 민재의 표정이 묘하게 어색했다. 마치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0.1초씩 어긋난 느낌.
그때였다.
화면 속 민재가 오른쪽 눈썹을 긁었다.
“어?”
민재는 아직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화면 속에서는 이미 긁고 있었다. 그는 당황해서 멈춰 섰다. 하지만 손이 저절로 올라갔다. 의지와 상관없이, 마치 프로그램된 것처럼 오른손 검지가 눈썹에 닿았다.
긁었다.
화면 속과 똑같은 동작이었다.
‘1, 2, 3.’
마음속으로 세어 보았다. 정확히 3초였다. 화면이 3초 앞서 있었다.
“뭐야, 이거…”
민재는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화면 속 자신은 내려놓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들고 있는 채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니, 난 아직 안 쉬었는데.’
하지만 3초가 지나자, 그의 폐가 저절로 공기를 밀어냈다. 후우. 화면 속과 똑같은 소리, 똑같은 길이, 똑같은 리듬.
심장이 빨라졌다.
이건 지연이 아니었다. 랙도 아니었다. 화면은 정확히 3초 후의 자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고는 100% 현실이 되었다.
민재는 실험해 보기로 했다.
숨을 참았다. 절대 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화면 속 민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3초 동안 버티면 이 이상한 일치가 깨질 것이다.
1초.
화면 속 민재가 눈을 깜빡인다.
2초.
화면 속 민재가 입을 벌린다.
3초.
화면 속 민재가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현실의 민재도, 의지와 무관하게, 똑같이 숨을 들이켰다. 폐가 스스로 팽창했다. 마치 몸이 화면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이게 대체…”
말을 끝내지 못했다.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확히는—화면 속에서 먼저 들렸다.
화면 속 민재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확히 3초 뒤, 현실의 문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났다.
쿵. 쿵.
완벽히 똑같은 리듬, 똑같은 강도.
민재는 온몸이 굳었다. 밤 2시에 누가 문을 두드린다? 이 원룸 건물에는 관리인도 없다. 이웃들은 모두 잠들었을 시간이다.
“누, 누구세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화면 속 민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옷장 쪽이었다.
화면 속에서 옷장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틈. 그 틈 사이로 까만 어둠이 보였다. 어둠이 아니라, 빛이 닿지 않는 ‘구멍’ 같은 것.
1초.
2초.
3초.
삐걱.
현실의 옷장 경첩이 소리를 냈다. 문이 조금 열렸다. 민재는 옷장을 열지 않았다. 바람도 없었다. 그냥 저절로, 화면 속 시간표를 따라 열린 것이었다.
“뭐야… 뭐야…”
민재는 뒷걸음질 쳤다. 등이 벽에 닿았다. 휴대폰을 떨어뜨릴까 생각했지만, 손가락이 화면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화면이 유일한 경고였다. 3초 후를 알려주는 유일한 창이었다.
‘112를 눌러야 해.’
그는 엄지를 움직였다. 홈 화면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화면 속 민재는 전화기를 귀에 대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든 채로, 아주 천천히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쉿.’
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입모양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 민재는 깨달았다.
화면 속 자신은 ‘경고’하고 있었다. 전화하지 말라고. 소리 내지 말라고. 왜냐하면—
방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냉장고 모터 소리,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 자신의 호흡 소리, 심지어 심장 박동 소리까지. 모든 것이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췄다.
세상이 숨을 죽였다.
민재는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화면 속 자신이 천천히 휴대폰을 돌려 뒤쪽을 비추고 있었다. 후면 카메라가 켜졌다. 방 안을 비추는 화면.
옷장이 보였다.
조금 열린 그 틈 사이로,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형체가 아니었다. 윤곽도 없었다. 그냥 ‘빈 자리’ 같은 것. 마치 방 안에 원래 있어야 할 어둠이 늦게 도착하는 느낌. 공간이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가 ‘지워지는’ 느낌.
그것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3초 후, 현실의 옷장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민재는 현관으로 달렸다.
화면 속 자신도 달리고 있었다. 문고리를 잡았다. 비틀었다. 민재의 손이 문고리에 닿았을 때, 전자식 도어록 화면이 깜빡이며 ‘잠금’으로 바뀌었다.
“안 돼!”
그는 비밀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화면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하고 있었다. 다만 3초 뒤의 입력을 받고 있었다. 그가 지금 누르는 숫자는, 3초 전 자신이 눌렀어야 할 숫자였다.
시간이 어긋났다.
민재는 뒤를 돌아보았다. 옷장 쪽을.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3초가 남았으니까.
그는 다시 휴대폰 화면을 봤다.
화면 속에서, 그 ‘빈 자리’가 이미 방 중앙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의 사물들이 미세하게 변했다. 책상 위치가 조금 틀어졌다. 벽지 얼룩의 모양이 달라졌다. 시계 초침이 반대로 움직였다.
시간이 덮어씌워지고 있었다.
2초.
민재는 창문 쪽으로 달렸다. 하지만 화면 속 자신은 창문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1초.
화면 속 민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온 것처럼. 아니, 얼굴이 화면 쪽으로 다가온 것이다.
똑같은 눈. 똑같은 흉터. 똑같은 입술.
하지만 눈동자의 초점이 이상했다. 카메라를 보는 게 아니라, 카메라 ‘너머’를 보고 있었다. 렌즈 뒤편의 민재를, 3초 전의 민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 속 민재가 손을 들어 렌즈를 덮었다.
그 손바닥에 흉터가 있었다.
길게 긁힌 자국. 막 아문 듯한, 붉은 선. 민재의 손에는 없는 흉터.
0초.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민재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이미 화면으로 봤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현실에서도 똑같은 촉감이 입을 덮었다.
차갑고 건조한 손바닥.
누군가의 손이 뒤에서 그의 입을 막았다. 숨이 막히는 거리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화면 속 입모양과 완벽히 일치하는, 3초 전에 이미 예고된 목소리.
“이제—”
민재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3초는 비명을 지르기엔 짧았고, 입을 막기엔 충분했다.
2. 복사
다음 날 아침, 민재는 평소처럼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커피를 내렸다. 거울 앞에 섰을 때 오른손 손바닥에 난 붉은 흉터를 보았지만, 언제 생긴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을 때, 카메라 앱이 켜져 있었다. 프리뷰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화면 속 민재가 웃었다.
3초 뒤, 현실의 민재도 웃었다.
완벽히 똑같은 미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