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거실, 넓게 사는 법 — 한 달 살림 실험기

이사를 온 첫날, 나는 거실의 정중앙에 서서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 전선 한 가닥을 멍하니 바라봤다. 소파는 창 쪽을 등지고 있었고, TV 장은 창문과 겨루듯 서 있었다. 가구들은 제 자리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었지만, 사람은 어디에도 편히 앉을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때 결심했다. 이 집에서는 “평수”가 아니라 “느낌”으로 산다고. 한 달 동안 거실을 조금씩 바꾸며, 작은 공간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첫 주는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데서 시작했다.

도면 대신 종이에 간단한 스케치를 그리고, 아침과 오후, 밤에 거실 바닥에 드는 빛의 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여름 햇살은 남쪽 창을 통해 러그 모서리를 핥듯 들어왔다가, 저녁이 되면 소파 뒤 벽을 길게 타고 내려갔다. 나는 그 빛을 가구 배치의 “길 안내자”로 삼았다. 낮 동안 가장 밝은 자리에 소파를 두면 앉았을 때 시야가 개방되고, 밤에는 조명 하나만 켜도 그림자가 매끈하게 흐른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소파를 창과 비스듬히 두고, 텔레비전은 벽에 걸어 바닥에서 장 하나를 치웠다. 바닥이 한 줄 드러나는 순간, 방은 똑같은 크기인데도 눈은 이미 넓어졌다고 속삭였다.

둘째 주에는 색을 다뤘다.

벽을 새로 칠하진 않았지만, 커튼과 쿠션, 러그의 톤을 맞췄다. 거실의 배경은 회색빛이 도는 아이보리였는데, 여기에 너무 강한 색을 더하면 면적이 잘린다. 그래서 나는 한 톤 낮은 베이지 커튼과 질감이 다른 두 가지 쿠션을 놓고, 러그는 소파보다 폭이 넓고 테이블보다 길이가 긴 제품을 골랐다. 러그의 가장자리가 소파 다리 뒤까지 살짝 숨어 들어가게 깔면 시선의 경계가 흐려진다. 눈이 쉬는 면이 많아질수록 공간은 조용히 확장된다. 오히려 포인트 컬러는 책등과 작은 액자, 그리고 화분 잎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내버려 두었다. 강요하지 않은 색이 더 오래 간다.

셋째 주에는 빛을 조정했다.

집주인이 남겨 준 형광등은 밝았지만 차가웠다. 나는 따로 전등을 떼지 않고, 전구만 교체했다. 저녁에는 3000K의 따뜻한 전구가 방을 감싸고, 책을 읽을 때는 4000K 스탠드를 켰다. 색온도를 굳이 외울 필요는 없다. 손등을 비춰 봤을 때 피부색이 자연스럽고, 글자가 번지지 않으면 그게 정답이다. 조명은 개수를 늘리기보다 목적을 나눴다. 천장의 메인등은 최대한 낮추고, 소파 옆 스탠드로 그림자를 길게 만들고, 선반 밑 간접 조명으로 벽을 먹색이 아닌 밝은 면으로 보이게 했다. 빛이 모서리를 스치면 사라지던 입체감이 돌아온다. 이때 작은 원칙을 세웠다. 모든 조명은 눈이 아니라 벽과 사물을 비춘다. 사람은 그 반사를 보고 편안함을 느낀다.

넷째 주에는 동선을 정리했다.

처음엔 소파와 테이블 사이 거리가 답답했고, 테이블 아래 전선은 늘 우리 발목을 잡았다. 테이블을 10cm만 창쪽으로 옮기자 소파 앞에 발을 내딛는 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가장 큰 적, 전선을 숨겼다. 멀티탭은 소파 아래가 아니라 TV 뒤 벽면에 고정했고, 케이블은 벽 색과 비슷한 케이블 커버로 눌러 모서리를 따라 내려보냈다. 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그제야 알았다. 미니 선반 하나를 소파 팔걸이 높이에 맞춰 붙여 두니, 리모컨과 책이 테이블 위를 점령하던 습관도 사라졌다. 정리란 버리는 기술이 아니라 자리를 찾아주는 기술이라는 걸 늦게 배웠다.

식물은 한 달 실험의 마지막 퍼즐이었다.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려는 욕심으로 아무 것도 두지 않으면 결국 차가워진다. 대신 시선을 끌어당기면서도 거슬리지 않는 크기의 화분 하나를 선택했다. 키 큰 식물은 천장 높이를 강조하지만, 지나치면 벽을 눌러 버린다. 그래서 허리 높이 정도의 싱그러운 잎사귀를 창가에 비스듬히 두고, 작은 유리병에는 유칼립투스 한 줄기를 꽂았다. 통로에는 아무 것도 놓지 않았다. 걷는 길만큼은 비워두는 것이 결국 집을 가장 넓게 만든다.

가끔은 실패도 있었다. 테이블을 원형으로 바꾸면 부드러워질 거라 믿고 들였지만, 우리 집의 직선적인 벽과 어울리지 않았다. 원형은 오히려 동선을 불명확하게 만들었다. 다시 사각형으로 돌아오자 길이 생겼다. 이 집과 나의 리듬에는 직선이 맞다는 단순한 사실을, 빙 돌아가서 이해했다. 소파 위 쿠션도 처음엔 크고 푹신한 것들로 채웠다가, 앉을 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두 개만 남겼다. 넉넉함은 물건의 양에서 오지 않았다. 여백에서 왔다.

한 달이 끝나갈 무렵, 나는 거실에서 하루를 종종 보냈다.

아침에는 커튼을 반쯤 열고 따뜻한 조명은 끄고, 오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 빛이 러그의 결을 따라 흐르게 했다. 해가 기울면 스탠드 불만 켜고 벽을 비추었다. 그때마다 방은 같은데 다른 표정을 지었다. 소파에 앉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수가 작은 집은 단점이 아니라, 결정의 빈도가 높은 집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섬세해질 기회를 준다고. 작은 변화 하나가 바로 체감된다. 수납을 낮게 깔고 벽을 드러내는 선택, 전선을 숨기고 바닥을 비우는 선택, 시선이 멈추는 곳을 한두 곳으로 줄이는 선택. 그 선택이 모여 집의 인상이 된다.

이 경험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려면 ‘팁’ 몇 가지로도 정리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도움이 된 건 숫자가 아니라 감각을 믿는 연습이었다. 낮의 빛이 드는 방향을 살피고, 밤의 조명이 만든 그림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앉았을 때 보이는 면과 서 있을 때 보이는 면을 번갈아 확인하는 일, 걸으면서 걸림돌을 찾는 일. 가구 쇼핑 전에 먼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꼭 새것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있는 것을 옮기고, 가려야 할 것만 숨겼다. 공간은 그렇게 조용히 넓어진다.

마지막 날, 처음 찍어 둔 사진과 지금의 거실을 나란히 비교해 보았다.

가구는 몇 개 빠졌고, 조명은 더 낮아졌으며, 바닥은 길게 드러났다. 하지만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내 마음이었다. 집에 들어서면 어깨가 먼저 내려가고, 소파에 앉으면 시선이 벽의 그림자를 따라 쉬었다. 산다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은 자리를 조금 덜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거실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알게 됐다. 작은 집은 넓을 수 있다. 넓어진다는 건 면적이 커지는 일이 아니라, 일상의 여유가 늘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 글을 읽고 지금 바로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거실 한가운데를 가르는 선을 지워 보는 것이다. 그것이 전선이라면 숨기고, 러그의 경계라면 소파 뒤로 살짝 밀어 넣고, 가구의 엣지라면 벽과의 간격을 조금만 띄워 보라. 밤이 오면 조명을 하나만 켜고, 그 빛이 벽을 어떻게 쓰다듬는지 지켜보라. 그러면 당신의 거실도 어느 순간, 처음 이사 온 날보다 한층 넓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넓음 속에서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가벼워질 것이다.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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